단편 240202-2

미엘의 의식은 허공을 헤매는 듯 했다. 어지러웠다. 그 중에서도 그녀는 하이엔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그 웃음, 내가 항상 재수없다고 투덜거렸던 그 웃음. 그리운 그 웃음. -미엘, 나는 늘 존재해. 너와 함께 존재해. '웃기시네.' 그의 깔깔거리는 웃음이 느껴졌다. -넌 정말 재미있어. 그래서 네가 좋아. '그래, 예전에 네가 자주 그렇게 말했지. 난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야.' -사실 널 만나기 전에는 더 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널 만나고 나서 조금 더 존재하고 싶어졌어. 널 지켜보고 지키기 위해서. 몇백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나는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알게 되었거든. 하이엔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정령계..

이야기 2024.02.02 0

단편 240202-1

해가 지고 있었다. 곧 어두워질 것이고 길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 미엘은 그저 숲길을 걷고 걸을 뿐이다. 가야 한다는 의지 외에 미엘은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격한 마법 전투로 인해 몸은 무거웠고 손은 피로 끈적거렸다. 누구의 피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레미는 죽었어. 내가 죽였어. 레미의 마지막을 확실하게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미엘은 알 것 같았다. 엄청난 싸움이었지. 근방의 생물들의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했는데, 그것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준 것 같기도 해. 레미는 이미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았지만 말이야. 악역을 하려면 그렇게 해야지. 모두에게 미움을 사야지. 그럼 난 뭐였던 걸까. 시간이 지날 수록 몸의 감각이 사라져간다. 어디에선가 흐르는 피 때문에 오른쪽 눈은 뜰 수가 없었고, 다리..

이야기 2024.02.02 0

황박사님과의 1월 상담 이후.

황박사님과의 상담. 그 동안의 상담과는 다르게 올해 1월 상담은 가슴에 화살이 꽂힌 느낌이었다. 전의 상담들이 생채기였다면 이번에는 훅 들어온 느낌이었다. 무서워서 녹음파일을 듣지 못했다. 말을 나누었던 내용들이 기억이 났지만 그때의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 머리속에서 복잡하게 뒤섞인 나의 자책들이 생각나서 쉽게 열지 못했다. 한달 후에야 녹음파일을 열었다. 당시의 내 생각과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객관적으로 들을 수 없었다. 나의 참담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두번 듣고 세번째는 녹취록도 읽었다. 계속 기분이 가라앉았다. 나란 인간은 이렇게 한심하네, 살 가치가 있는 건가? 난 왜 이렇게 오만하면서도 어린아이같고 멍청할까? 오늘 잠시 내가 최근에 고민하는 것 중 하나를 생각해 보았다. 왜인지 누군..

그냥일상 2022.02.23 0

For Sisterhood,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2019

작년부터 기다렸던 영화 작은 아씨들. 예고편과 포스터만으로도 무척 기대되었다. 원작 소설 작은아씨들은 상당히 여러번 읽어서 내용은 다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재해석을 했는지가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느낌은 '다르다'였다. 원작과 기존의 공식들을 해체해서 재편집한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이라고 해야 할까. 1. '현재'와 '회상', '현실'과 '환상' 영화는 원작이나 그 간의 영화들처럼 자매들의 어릴 적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네 자매 중 둘째 조는 뉴욕의 출판사에 자신의 글을 팔러 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아픈 베스를 간호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회상하듯 어릴적 이야기가 펼쳐진다. 먼저 비주얼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마치 가(家)의 현재와 회상 부분의 씬 분위기가 ..

영화 2020.02.29 0

[WPI] 2020. 2. 15 로맨로맨 WPI 소모임

- 장소: 사당역 호프집- 인원: 4명 (날라리, 최상, 로에, 로엠)- 시간: 7시~11시 1. 잡담 로엠님을 기다리면서 셋이서 수다. 사실 내가 뭔 소리를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람을 처음 만나거나 모임에 나갈 때는 일부러 텐션을 좀 높여 놓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무슨 말을 했는지 솔직히 잘 기억이 안 난다. -_-; 아무말 대잔치했나 보다. 그래서 다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휴먼이나 릴레이션이 높은 줄 안다. (둘다 엄청 낮다) 하지만 바로 그 전날 친한 친구 '골골이'를 만나서 이야기할 때의 나는 (적어도 내 생각에는) 좀 텐션이 다르다. 어쨌든 로맨과 아이디얼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2. 모임 주제_자신의 롤모델 날라리님: 서태지, 대학에서 짤린 황모 박사님(ㅋㅋ), 유시민, ..

그냥일상 2020.02.18 0

[WPI] 2019. 12. 21 책과 영화와 WPI

날라리님과는 종종 만나서 wpi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번에는 왠지 그냥 세상한탄하는 게 싫어서 주제를 정하고 싶었다.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본다. - 장소: 사당역 호프집 - 인원: 2명 (날라리, 최상) 1. 프롤로그_잡담 날라리님(로맨-에이전트)이 상담하시는 분과 경기 남부 스터디 그룹을 만드실 예정. 어떤 스터디그룹이 될지는 목적과 컨셉은 필수라고 생각이 되나 추후 좀더 정리가 필요함. 이 스터디그룹을 통해 '무엇을 할 건지'를 먼저 정하는 것고, 그 후에 확장하는 것으로 하자. 최상(에이전트-아이디얼)의 주변에는 로맨티스트가 거의 없다. 거의 안 만나는 남동생 정도? 보통 아이디얼은 로맨티스트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듯) 내 경우에도 로맨이 징징..

그냥일상 2019.12.23 0

영화 '조커' 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점 5가지

여러모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조커'. 다크라이즈 이후에 배트맨보다 더 인기가 많아진 것 같다. 영화 '조커'는 한 인간이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매우 개인적인 조커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재미있는 점 5가지를 발견했다. 1. 캐릭터의 변화, 융합 먼저 아서 플렉/광대/조커의 관계이다. 영화는 시간 순서에 따라 아서플렉->분리된 두 캐릭터->조커로 변화한다. 초반부의 광대분장을 한 아서 플렉을 보면, 그는 불량배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반항하지 못하는 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는 총을 가지게 되고, 광대분장을 한 아서는 총으로 살인이라는 악행을 저지른다. 광대분장을 하지 않은 아서는 착하고 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는 신문이나 광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

영화 2019.10.24 0

T2: 트레인스포팅 2 (T2: Trainspotting 2, 2017)

Iggy Pop의 Lust for Life가 먼저 생각나는 영화. 거침없이 달리던 그들이 중년이 되어 돌아왔다. 두근거렸다. 내 10대의 최고 영화로 꼽았던 트레인스포팅이 2번째로 돌아 오다니. 감독이 바뀐 것도, 배우가 바뀐 것도 아니다. 아아 달라진 건 대니 보일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붙은 거구나. 암스테르담으로 떠났던 마크는 심장발작이 일어난 뒤에 고향을 찾아 에딘버러로 돌아 온다. 그리고 T1에서 가지고 튀었던 돈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간의 물가 상승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마크. ㅎㅎ 게다가 에딘버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수 없는 도시가 되었고 동유럽에서 온 아가씨들이 에딘버러의 관광객을 환영하는 (여러가지 의미로) 장소가 되었다. 어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그의 방은 떠날 ..

영화 2019.07.29 0

파울 클레, 황금물고기,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그림

한 무리의 젊은 사람들이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저들은 행복해서 다행이야.'문득 나는 같이 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걸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가상인물들은 스토리 안에서 모두 조연이었다. 주인공의 친구, 주인공의 형제, 자매, 이웃. 내 스토리 상에서 주요인물들은 메인 스토리의 외전이라는 전제가 항상 붙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주인공으로 내 삶을 못 살고 있다는 의미일까? 상상속의 나를 대변하는 페르소나 조차 조연을 담당하며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운 걸까? 하지만 조연으로서의 인물은 자신만의 인생이 있다. 그들은 실상 주인공을 돕거나 서포트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만의 주관성에 의한 것이다. 다만 누구의 논점에서 보느냐가 문제일..

망상취미 2018.12.21 0

추천 뮤지컬 Once On This Island

Once on this island. 옛날 옛적에 한 섬에서...이 단어로 시작해서 같은 단어로 끝나는 뮤지컬. 음악, 연기, 연출이 모두 뛰어난 대단한 작품이다. 게다가 눈물 나고 감동적이면서 연출이 새롭고 재미있는 뮤지컬. 뉴욕 브로드웨이에 유일한 원형 극장인 Circle in the square theater에서 하는 Once on this island를 보러 갈때 왜 굳이 원형극장에서 할까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뮤지컬을 한편만 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기대없이 들어간 극장. 모래로 덮힌 원형 무대는 마치 콜로세움의 아레나처럼 관객들에게 둘러싸인 형태였다. 한쪽에는 배우 출입구가 물과 통해 있다. 암전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보통의 극장과는 달리 5분전 내가 들어가기 전부터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관객..

뮤지컬, 공연 2018.11.26 0